본고는 1609년에 琴應壎이 편찬하여 판각한 목판본 『四書釋義』가 李
滉이 작업한 『四書釋義』와 다르다는 사실을 究明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영주 소수박물관에 소장된 필사본 『退溪庸學釋義辨吳와 경북
대에 소장된 필사본 『退溪四書釋義를 발굴하여 목판본 『四書釋義와 수
록 내용을 비교하였다.
『退溪庸學釋義辨吳는 「退溪先生中庸釋義辨誤」와 「退溪先生大學釋義辨誤」로 구성되어 있으며, 『中庸章句大全과 『大學章句大全을 풀이한
것이다. 총면수는 13면이며, 中庸 7면, 大學 6면이다. 中庸辨誤는 표제어
‘天命之謂性’부터 ‘莫能載破’까지 『中庸章句大全의 經文 89조목을 大字
로 제시하고, 그 아래에 小字 雙行으로 풀이를 제시하였다. 大學辨誤는
표제어 ‘先正其心’부터 ‘必察乎此’까지 『大學章句大全의 經文 및 傳文
44조목을 大字로 제시하고, 그 아래에 小字 雙行으로 풀이를 제시하였다.
中庸辨誤의 해석 어휘는 89조이며, 大學辨誤는 44조이다. 이는 목판
본 中庸釋義가 251조, 大學釋義가 101조인 것과 차이를 보인다. 中庸辨
誤의 17조목과 大學釋義의 5조목은 목판본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또
辨誤는 이황이 애초에 작성한 中庸釋義와 大學釋義를 수정하고자 붉은색
과 검은색은 이용하여 본문을 고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
어 辨誤는 1609년에 판각된 『四書釋義보다 앞 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본고를 통해 목판본 『四書釋義는 금응훈 개인의 의견이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향후 李德弘의 『四書質疑, 琴輔의 『四書質
疑 등과 수록 내용의 정밀한 비교 검토를 필요로 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