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평성 불교사찰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낙양의 불교사찰은 구체적인 위치, 발원자, 사원 내 건물내용, 불교활동 등 다양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성과 낙양지역의 북위 불교사찰 내 탑과 금당은 각각 1개소이며 평면은 방형인 예가 일반적인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된다. 그러나“ 八角”건물의 존재 가능성과 12각형 탑의 현존, 다양한 탑의 재료는 북위 불교사찰의 특징으로 추정된다.
낙양성에 건립된 영녕사는 평성의 영녕사를 염두에 두고 천도 당시 이미 도성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평성, 낙양에 존재한 두 영녕사는 궁성의 남쪽에 위치하였다. 평성, 낙양지역의 불교사찰 중 가장 높고 큰 목탑을 소유한 영녕사는 불교사찰 자체에서도 아주 중요시 되었음을 의미한다.
낙양 영녕사 9층 탑은 곽안흥에 의해 건립되었고, 그는 영녕사와 경명사를 건립한 기술자였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영녕사 건립의 총감독직인“ 永寧寺典作副將”을 역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평성과 낙양성 건설에 참여한 王遇, 蔣少游, 李沖는 궁전과 禮制性 건축물에 참여한 공인들의 이름이 황실 불교사찰의 건립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사실은 흥미롭다.
북위 평성, 낙양시대 최고 권력을 장악한 文明太后 馮氏와 靈太后 胡氏는 불교사찰, 석굴 등 다양한 불사활동을 진행하였다. 여성이 당시 최고 권력을 장악한 후 거액의 세금을 들여 거대한 사찰을 건립할 수 있었던 사회적인 배경은 동시대 남조와는 전혀 다른 북조의 특징이다. 북조 여성들의 강한 여성상은 북위 선비족의 유풍이며 母系氏族制 풍습은 탁발 선비족을 비롯하여 북방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