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慧?の入唐求法と東アジアの?敎交流
- ㆍ 저자명
- 田中史生
- ㆍ 간행물명
- 동국사학KCI
- ㆍ 권/호정보
- 2012년|52권 (통권52호)|pp.199-232 (34 pages)
- ㆍ 발행정보
- 동국역사문화연구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JPN| PDF텍스트(3.21MB)
- ㆍ 주제분야
- 교육학
에가쿠의 입당은 확실한 것으로는 회창 원년(841)~동 2년(842), 회창 4년(844) 3월 이전~대중 원년(847), 대중 2년(848)~대중 3년(849), 대중 6년 (852) 전후, 함통 3년(862)~동 4년(863)의 총 5회를 헤아리고, 게다가 대중 12년(858) 전후의 보타산 전승(?承)을 더해도 6회의 입당의 가능성이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입당승의 왕래로서는 월등한 횟수이다. 이 사이에 그는 오대산?천태산을 포함한 당 각지를 순례하고, 당승의 일본 초빙에 성공하였으며, 혹은 신라인?당인의 협력을 얻어 명주 일본의 교역 루트를 열고, 이 항로상에 있는 보타산의 관음신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또 백씨문집 이나 당제(唐製)의 석조물을 가져오는 등, 일본의 당문화의 이입(移入)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일견 일본을 초월한 존재로 평가할 수 있는 에가쿠에게는 사료H에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와 연결되는‘일본’을 강하게 의식한 자세도 보인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다치바나노가치코(橘嘉知子) 등 일본 지배층의 의사가 작용하고 있던 것도 경시할 수 없다. 에가쿠가 일국(一?)?일사(一寺)에 얽매이지 않고, 동아시아교류세계를 그대로 자신이 살아갈 장으로 한 것은, 심각한 왕위계승문제를 포함하며 정쟁을 되풀이 하는 당시 일본 지배층들의 보다 보편적인 가치?문화를 추구하는 자세와 관계있다고 생각한다.
Ⅰ. はじめに Ⅱ. ?昌元年渡唐と在唐新羅人 Ⅲ. 慧?と?昌の?? Ⅳ. 大中元年の??と江南の唐商 Ⅴ. 普陀山の慧??承と新羅人 Ⅵ. 石造物の?? Ⅶ. むす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