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 갈남마을의 나잠업과 마을경제
- ㆍ 저자명
- 김창일
- ㆍ 간행물명
-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학술대회지
- ㆍ 권/호정보
- 2014년|71권 (통권37호)|pp.79-89 (11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대학박물관협회|한국
- ㆍ 파일정보
- 학술대회지|KOR| PDF텍스트(0.46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국립민속박물관은 ‘강원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삼척시 원덕읍 갈남1리를 어촌조사지로 선정하여 2013년 2월부터 9월까지 마을에 상주하며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 마을은 동해안에 위치한 전형적인 소규모 어촌마을로 어로활동의 역사와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갈남마을은 구릉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서 토지가 좁아 경작지가 협소하다. 현재 벼농사를 짓는 가구는 없는 상태이고 경작지 전체는 밭작물이다. 밭작물은 주로 고추, 마늘, 옥수수, 고구마 등이며 대부분은 자가소비용으로 경작되고, 일부 남는 수확물을 판매하는 정도로 농업의 비중은 미미하다. 농업이 자가소비용으로 경작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협소한 반면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은 풍족하다. 갈남마 을의 입향시조와 관련된 전설에서도 풍부한 해산물로 인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갈남마을의 입향시조인 여양(驪陽) 진씨가 갈남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전후인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낙향하여 갈남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전날 없던 바위가 바다 위로 올라와서 이상히 여기고 살펴보니 바위 전체에 전복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해산물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곳임을 알고 갈남마을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갈남마을 해변은 갯바위가 유난히 많아서 미역, 우뭇가사리 등 해초류가 많이 자랐고, 이를 먹이로 삼는 전복, 성게, 해삼 등도 많이 잡혔다. 일제강점기에는 갈남마을에 전복가공공장이 세워졌을 정도였으니 여양 진씨 가문에 전승되는 이야기가 허황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특히 갈남 앞바다의 수많은 갯바위와 낮은 수심으로 인해 미역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역에 걸려서 노를 저어서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에는 제주도에서 출가물질을 온 해녀 50~60명과 머구리 잠수부 10여 명이 물질을 했는데 주변 마을에서는 가장 많은 해녀와 잠수부가 갈남마을에 모여들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했던 곳이다.
Ⅰ. 동해안의 어촌마을, 8개월간의 기록 Ⅱ. 미역채취로 호황을 누렸던 60~70년대 갈남마을 Ⅲ. 미역채취와 분배 Ⅳ. 미역생산량의 감소와 마을경제의 쇠퇴 Ⅴ. 마무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