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신라 금공기술의 수용과정을 보요기법과 누금세공기법의 금공기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두 기술은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새로이 유입된 금공기술이다. 이 두 기법의 수용과정은 신라 금공의 계보와 성격을 살펴보는 작업과 연관된다.
먼저 보요기법을 살펴보면, 인도 쿠샨 왕조 성립기인 1세기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 유적의 보요관과 관식에 보이는 보요장식은 거의 동시기인 1세기 선비족 무덤인 內蒙古 科左后旗 哈拉烏 蘇毛力吐嘎查의 봉황관식에서 살필 수 있다. 한반도 보요장식의 제작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모용선비다. 모용선비 장인이 제작한 보요기법은 금실을 3~4회 꼰 다음 보요를 매달아 그 떨림을 배가시켰는데, 이러한 기법은 고구려 禹山墓區 太王陵에서 발견된 보요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는 선비족의 금공 장인이 고구려 금공 장인에게 보요기법을 전수한 것을 의미한다. 이 기법은 신라 보요에도 적용되어, 다시 고구려 장인이 신라 장인에게 알려준 기술의 전수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즉 중앙아시아의 금공 장인이 내몽고의 선비족 금공 장인에게, 다시 요서의 모용선비의 금공 장인이 고구려의 금공 장인에게, 다시 고구려 금공 장인이 신라의 금공 장인에게 보요기법을 전수한 연결고리가 있다. 실크로드의 네트워크에 따른 장인들의 인적 교류가 주목되는 것이다.
신라의 금공기술에는 보요기법과 같이 초원 실크로드를 타고 동점된 기술만이 접목된 것이 아니다. 누금세공기법 중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제보석감장팔찌>에 보이는 보석감장을 결합한 누금세공기법은 보요기법의 루트를 통해 신라에 전달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금환연접구슬은 선비족 유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방지역의 해상실크로드를 타고 올라온 새로운 기법이었다. 이 기법이 고구려에 수용된 다음 다시 신라식으로 변용되어 귀걸이의 중간식으로 또 금관의 수하식의 연결부로 적극 사용되었다. 이 글에서는 신라 금공예의 전개 과정에서 실크로드 네트워크를 통한 장인들의 교류를 통해 새롭게 수용된 신라 금공기술의 국제성과 신라만의 독자성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