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납토성 조사 현황과 신 자료 소개
- ㆍ 저자명
- 소재윤
- ㆍ 간행물명
-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학술대회지
- ㆍ 권/호정보
- 2012년|66권 (통권32호)|pp.57-75 (19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대학박물관협회|한국
- ㆍ 파일정보
- 학술대회지|KOR| PDF텍스트(1.52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삼국사기』등의 문헌에 의하면 한성(漢城) 백제시대(B.C.18~A.D.475)의 도성은 처음 에는 한강 이북의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에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은 온조왕(溫祚王) 14 년에 한강 이남의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옮긴 후 근초고왕(近肖古王) 26년(371)에 한산의 한성으로 옮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성의 위치에 대하여 이전까지 그 후보지로 천안 위례산성, 하 남시 춘궁리 일대, 서울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등 여러 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몽촌 토성(夢村土城)과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이 본격적으로 발굴된 이후 현재 두 성을 중심으 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축조 상한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약 3.5km에 이르는 판축토성의 축조기법과 규모, 토성 내부에서 확인된 도로․제사시설․대형건물․다량의 기와 등으로 볼 때 풍납토성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북성(北城) 혹은 대 성(大城)일 가능성이 있다. 이 정도의 성벽을 쌓으려면 최소한 수백만 톤의 흙이 쓰였을 것이며, 연인원 백만 명 이상이 동원되어야 하는 바 이러한 대역사는 당시 왕권에 준하 는 강력한 절대 권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Ⅰ. 풍납토성 조사개관 Ⅱ. 풍납토성 건물지 Ⅲ. 지상건물지의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