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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戰爭 직전기 中日經濟提携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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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日戰爭 직전기 中日經濟提携論
저자명
김지환
간행물명
중국학논총KCI
권/호정보
2006년|22호(통권22호)|pp.1-18 (18 pages)
발행정보
한국중국문화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0.44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공황 이래 중국의 경제적 위기는 민족공업의 쇠퇴와 농촌경제의 파탄으로 나타났으며, 이에따라 국민정부는 경제 구제 정책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소비에트의 혁명 대상지인 농촌을 확보함으로써 소비에트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인 동시에, 일본의 침략정책에 대비하기 위한 항전의 물적 기초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외교정책의 협조 대상국은 당연히 영국과 미국일 수 밖에 없었다. 中日戰爭 직전기 중국의 외교정책 수립과 실천을 둘러싸고 국민정부 내부에서는 歐美派와 對日和解派가 대립하고 있었다. 전자의 그룹은 排日派라고도 불리웠는데, 여기에는 재정부장 宋子文을 비롯하여 주프랑스공사 顧維鈞, 주러시아대사 顔惠慶, 立法院長 孫科 및 王正廷, 王寵惠, 劉文島, 諸昌年, 吳凱聲, 王廷璋이 속해 있었다. 후자는 親日派로도 불리웠는데, 여기에는 汪精衛를 비롯하여 黃郛, 吾震修, 李擇一, 殷汝耕, 袁良, 唐有任, 陳儀, 楊永泰, 張群, 韓復榘 등이 있었다. 1931년 9․18사변, 1932년 만주국 성립을 계기로 중국 전역에서는 광범위하고 격렬한 배일운동이 전개되었는데, 특히 민족자본가들은 日貨排斥運動과 國貨獎勵運動을 선도함으로

기타언어초록

1930年代初,圍繞着中國外交政策及方針,國民政府首腦里存在着兩個派系,卽首先有以宋子文爲代表的歐美派或者排日派,其次有以汪精衛爲代表的對日和解派,或者親日派.正在9․18事變後全中國發生低制日貨運動之背景下,歐美派可以把握立案及實行外交政策的主導權.在這種情況下,財政部長宋子文堅持推進提高關稅率及成立原産國標記等一系列排日經濟政策.1933年,宋子文首先着手改訂關稅以提高進口稅率,而沮止綿製品等從日本進口的商品.再加上,在全中國廣範展開低制日貨運動之下,宋子文成立進口商品的原産國標記,以便一般中國人不曉得買下日貨.這些措施無疑對從日本進口的商品起了破壞作用,因而日本工商資本家繼續要求日本政府積極參與對中國政府的交涉. 1930年代中日之間的政治,軍事上的衝突及矛盾帶來了經濟上嚴重后果.9․18事變等日本對中國的侵略政策廣範引起在全中國的低制日貨運動,因而漸漸縮小日本的出口市場.在日本資本主義發展過程中,中國市場起初具有非常重要意義.但是日本對中國的侵略政策自然縮小日本工業商品的出口市場.對日本來說,中日之間的糾紛成爲日本貿易蕭條的根本原因.雖然日本侵略東北地區,而確保僞滿洲國爲日本工商業的獨占出口市場,然而這却廣範引起全中國的低制日貨運動,因而縮小中國市場.從此,日本不得不採取對中國和解政策.對中國來說,中日之間的衝突很快增加國庫財政負擔.在國民政府一年的財政支出中,軍事費用占着絶大比重.因此,爲解決財政負擔起見,恢復對日正常關係無疑成爲非常緊迫課題. 雖然汪精衛等對日和解派堅持主張實施中日經濟提携以及對日和解,然而宋子文仍然主張保持對日强硬政策.對蔣介石來看,爲集中軍事力量以展開剿共起見,中日之間的和解政策具有緊迫課題.中日經濟提携及緩解緊張措施無疑是解決財政惡化的最好辦法.日本政府反映日本工商資本家的利益,藉此要求國民政府取消或再改訂關稅等一系列排日經濟政策.這一過程中,宋子文成爲中日經濟提携的最大障碍.爲實現中日和解起見,蔣介石要求宋子文辭任財政部長.隨后改訂排日經濟政策,而事實上收容日本的要求,而且實現中日和解政策. 關鍵詞: 中日經濟提携, 宋子文, 外交政策, 關稅, 紡織工業, 棉花, 日貨排斥運動

목차

 序論
  1. 9․18事變 이후 國民政府의 排日政策
  2. 中日經濟提携論의 經濟的 基礎
  3. 中日經濟提携論과 중국 外交路線의 변화
  4. 中日經濟提携論과 중일 경제의 밀착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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