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고학으로 본 위만조선 왕검성
- ㆍ 저자명
- 정인성(Inseung Jung)
- ㆍ 간행물명
- 한국고고학보KCI
- ㆍ 권/호정보
- 2018년|106권 (통권106호)|pp.104-137 (34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고고학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9.13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본고는 종래 문헌사료에 의거해 비정되어 왔던 왕검성의 위치를, 고고학적 견지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제껏 왕검성의 위치를 문헌학계에서는 『史記』와 『水經注』 등 고대 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대동강 북안의 평양성지로, 고고학계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낙랑군치임이 분명해진 대동강 남안의 토성리(낙랑)토성으로 주목해 왔다. 그러나 이들 후보지에서는 고조선 당대의 물질문화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래로 여러 차례 조사된 평양성지는 낙랑군 이전으로 소급되는 고고자료가 출토되지 않았다. 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은 낙랑군 병행기에 속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구려 이후의 것들이다. 아울러 토성리(낙랑)토성은 문헌사료의 위만조선 멸망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인정하는 와중 주목한 지역이 요동반도이다. 문헌사료에 따르면 위만조선은 토착 조선인과 연·제 등지의 이주민들로 구성된 집합체라 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위한 물질문화는 기본적으로 전국계와 조선계의 문화가 병존하거나 접변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요동 반도에서는 대동강유역과는 달리 고조선의 청동기문화 위에 연·제 등지에서 이입된 물질문화 요소가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유형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 포착된다. 그러므로 낙랑군치가 왕검성의 고지에 세워졌고, 그래서 낙랑군치임에 분명한 평양이 왕검성일 것이라는 기왕의 설명틀에서 자유로워진다면 후기 고조선의 중심지를 요동반도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후기 고조선의 기저가 되는 물질문화는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로 상정되는데, 이 문화의 흔적이 요동지역의 성곽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유의미하게 분포하는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종래 문헌사료에 의거해 비정되어 왔던 왕검성의 위치를, 고고학적 견지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제껏 왕검성의 위치를 문헌학계에서는 『史記』와 『水經注』 등 고대 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대동강 북안의 평양성지로, 고고학계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낙랑군치임이 분명해진 대동강 남안의 토성리(낙랑)토성으로 주목해 왔다. 그러나 이들 후보지에서는 고조선 당대의 물질문화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래로 여러 차례 조사된 평양성지는 낙랑군 이전으로 소급되는 고고자료가 출토되지 않았다. 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은 낙랑군 병행기에 속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구려 이후의 것들이다. 아울러 토성리(낙랑)토성은 문헌사료의 위만조선 멸망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인정하는 와중 주목한 지역이 요동반도이다. 문헌사료에 따르면 위만조선은 토착 조선인과 연·제 등지의 이주민들로 구성된 집합체라 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위한 물질문화는 기본적으로 전국계와 조선계의 문화가 병존하거나 접변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요동 반도에서는 대동강유역과는 달리 고조선의 청동기문화 위에 연·제 등지에서 이입된 물질문화 요소가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유형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 포착된다. 그러므로 낙랑군치가 왕검성의 고지에 세워졌고, 그래서 낙랑군치임에 분명한 평양이 왕검성일 것이라는 기왕의 설명틀에서 자유로워진다면 후기 고조선의 중심지를 요동반도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후기 고조선의 기저가 되는 물질문화는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로 상정되는데, 이 문화의 흔적이 요동지역의 성곽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유의미하게 분포하는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Ⅰ. 머리말 Ⅱ. 고고학으로 본 <왕검성 대동강북안설>과 평양성 Ⅲ. 최근 북한학계가 주장하는 평양지역 고조선 토성의 검토 Ⅳ. 평양지역의 위만조선 병행기 고분과 유물 Ⅴ. 토성리(낙랑)토성의 재검토와 <왕검성> Ⅵ. 위만조선 물질문화의 조건과 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