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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 부여 지역 폐사지 조사와 일본인 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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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지기 부여 지역 폐사지 조사와 일본인 고고학자
  • -石田茂作과 藤澤一夫의 활동을 중심으로
저자명
이병호(Byongho Lee)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6년|98권 (통권98호)|pp.168-199 (32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4.64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이 글은 식민지기에 부여 지역 폐사지에 대한 고적조사사업이 실시된 배경과 그 사업에 참여한 일본인 고고학자들의 행적을 밝혀 그것이 가진 문제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II장에서는 朝鮮古蹟硏究會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이시다 모사쿠(石田茂作)가 중심이 되어 부여 지역폐사지 조사가 이루어진 배경을 고찰했다. 東京帝室博物館은 조선 만주실의 신설을 위해 유물의 확보 등을 목적으로 조선고적연구회에 매년 기부금을 내고 소속 관원들을 파견하였다. 당시 同館의 감사관으로 불교고고학 전문가였던 이시다 모사쿠는 飛鳥 문화의 원류의 해명, 그중에서도 聖德太子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法隆寺의 창건 시기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백제 지역 폐사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조사에 참여하였다. 그가 직접 조사한 군수리사지와 동남리사지는 일본 초기 사원의 원류를 해명하는 데 기여했지만 內鮮一體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자료로 활용되고 유물의 국외 유출이라는 문제를 남겼다. III장에서는 1939년 扶餘神宮 조영이 공표된 이후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가 부여에 상주하면서 폐사지를 조사한 내용을 다루었다. 당시 부여 지역은 부여신궁과 부여신도건설계획안이 마련되어 ‘內鮮一體의 靈地’로 선전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神都 건설을 위한 대규모 공사에서 발견되는 매장문화재의 문제에 대처해야 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대 사원과 기와 연구의 전문가인 후지사와 가즈오를 파견하였다. 그는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등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942년 7월부터 부여에 부임하여 부소산폐사지, 정림사지, 구아리사지 등 많은 폐사지를 조사했지만 당시의 조사 내용을 거의 공표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그의 일기를 보면 그가 일본의 초기사원과 백제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특히 정림사지의 발굴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梅原末治 考古資料 등에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조사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확인된다. 부여 지역 폐사지에 관한 고적조사사업은 조선총독부의 내선일체라는 정책과 부여신궁 조영이라는 국가적인 사업을 고고학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한 것이었다. 당시 발굴한 조사 내용의 미보고와 자료의 독점, 발굴품의 유출 등은 지금도 이 분야 연구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문초록

이 글은 식민지기에 부여 지역 폐사지에 대한 고적조사사업이 실시된 배경과 그 사업에 참여한 일본인 고고학자들의 행적을 밝혀 그것이 가진 문제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II장에서는 朝鮮古蹟硏究會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이시다 모사쿠(石田茂作)가 중심이 되어 부여 지역폐사지 조사가 이루어진 배경을 고찰했다. 東京帝室博物館은 조선 만주실의 신설을 위해 유물의 확보 등을 목적으로 조선고적연구회에 매년 기부금을 내고 소속 관원들을 파견하였다. 당시 同館의 감사관으로 불교고고학 전문가였던 이시다 모사쿠는 飛鳥 문화의 원류의 해명, 그중에서도 聖德太子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法隆寺의 창건 시기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백제 지역 폐사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조사에 참여하였다. 그가 직접 조사한 군수리사지와 동남리사지는 일본 초기 사원의 원류를 해명하는 데 기여했지만 內鮮一體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자료로 활용되고 유물의 국외 유출이라는 문제를 남겼다. III장에서는 1939년 扶餘神宮 조영이 공표된 이후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가 부여에 상주하면서 폐사지를 조사한 내용을 다루었다. 당시 부여 지역은 부여신궁과 부여신도건설계획안이 마련되어 ‘內鮮一體의 靈地’로 선전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神都 건설을 위한 대규모 공사에서 발견되는 매장문화재의 문제에 대처해야 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대 사원과 기와 연구의 전문가인 후지사와 가즈오를 파견하였다. 그는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등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942년 7월부터 부여에 부임하여 부소산폐사지, 정림사지, 구아리사지 등 많은 폐사지를 조사했지만 당시의 조사 내용을 거의 공표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그의 일기를 보면 그가 일본의 초기사원과 백제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특히 정림사지의 발굴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梅原末治 考古資料 등에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조사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확인된다. 부여 지역 폐사지에 관한 고적조사사업은 조선총독부의 내선일체라는 정책과 부여신궁 조영이라는 국가적인 사업을 고고학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한 것이었다. 당시 발굴한 조사 내용의 미보고와 자료의 독점, 발굴품의 유출 등은 지금도 이 분야 연구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朝鮮古蹟硏究會와 이시다 모사쿠(石田茂作)의 폐사지 조사 Ⅲ. 扶餘神宮 조영과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의 활동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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