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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토 외형으로 본 신라 전·중기의 왕릉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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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토 외형으로 본 신라 전·중기의 왕릉 추정
저자명
윤상덕(Sangdeok Yoon)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4년|93권 (통권93호)|pp.164-191 (28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1.9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신라의 왕릉으로 알려진 무덤은 총 36기에 달하나 이는 대부분 18세기에 비정된 것으로 정확한 주인을 알 수 없다. 왕릉급 무덤이 발굴되지 않아 고고학 자료가 부족한 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앞으로도 대형 무덤의 조사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 무덤의 외형 계측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대형 무덤의 평면형태와 크기를 주요 분석도구로 삼아 신라 전기와 중기에 속하는 왕릉의 판별과 주인공의 비정을 시도하였다. 신라 왕릉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에서 원형으로 변화하고, 크기는 점차 축소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월성북고분군에 있는 신라 전기의 왕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덤의 크기가 축소되지만 적어도 중기초기의 왕릉보다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크기 하한을 서악동고분군의 대형 무덤인 4호분과 3호분에 두고 크기가 그 이상인 무덤 13기(1·2군)를 왕(비)릉의 후보로 선정하였다. 구체적으로 대형합장분 3기(98호 황남대총, 90호, 134호), 초대형 무덤인 125호(봉황대), 130호(서봉황대), 그리고 106호(전 미추왕릉)·105호를 유력한 왕(비)릉으로 보았다. 125호분과 130호분 중에 왕비릉이 있다면 차순위에서 1기의 왕릉을 추가로 찾아야 하며 그 후보로 119호분을 들었다. 따라서 금관이 출토되어 기존에 왕릉급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무덤인 127호분(금령총), 128호분(금관총), 129호분(서봉총), 155호분이 왕(비)릉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중기의 왕릉도 평면형태, 크기, 호석형태의 변화 방향이 전제와 일치함을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서악동고분군 4호분을 법흥왕릉으로 비정하고 나머지 1~3호분 중에 진흥왕릉, 진지왕릉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전 진평왕릉이 무열왕릉 직전의 왕릉임을 설명하고 이를 진평왕릉으로 비정하였다.

국문초록

신라의 왕릉으로 알려진 무덤은 총 36기에 달하나 이는 대부분 18세기에 비정된 것으로 정확한 주인을 알 수 없다. 왕릉급 무덤이 발굴되지 않아 고고학 자료가 부족한 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앞으로도 대형 무덤의 조사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 무덤의 외형 계측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대형 무덤의 평면형태와 크기를 주요 분석도구로 삼아 신라 전기와 중기에 속하는 왕릉의 판별과 주인공의 비정을 시도하였다. 신라 왕릉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에서 원형으로 변화하고, 크기는 점차 축소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월성북고분군에 있는 신라 전기의 왕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덤의 크기가 축소되지만 적어도 중기초기의 왕릉보다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크기 하한을 서악동고분군의 대형 무덤인 4호분과 3호분에 두고 크기가 그 이상인 무덤 13기(1·2군)를 왕(비)릉의 후보로 선정하였다. 구체적으로 대형합장분 3기(98호 황남대총, 90호, 134호), 초대형 무덤인 125호(봉황대), 130호(서봉황대), 그리고 106호(전 미추왕릉)·105호를 유력한 왕(비)릉으로 보았다. 125호분과 130호분 중에 왕비릉이 있다면 차순위에서 1기의 왕릉을 추가로 찾아야 하며 그 후보로 119호분을 들었다. 따라서 금관이 출토되어 기존에 왕릉급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무덤인 127호분(금령총), 128호분(금관총), 129호분(서봉총), 155호분이 왕(비)릉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중기의 왕릉도 평면형태, 크기, 호석형태의 변화 방향이 전제와 일치함을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서악동고분군 4호분을 법흥왕릉으로 비정하고 나머지 1~3호분 중에 진흥왕릉, 진지왕릉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전 진평왕릉이 무열왕릉 직전의 왕릉임을 설명하고 이를 진평왕릉으로 비정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연구방법 Ⅲ. 연구전제 Ⅳ. 왕릉의 판별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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