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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三國後期 嶺南地域과 京畿·忠淸地域 鐵矛의 交流樣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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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原三國後期 嶺南地域과 京畿·忠淸地域 鐵矛의 交流樣相
저자명
김새봄(Saebom Kim)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1년|81권 (통권81호)|pp.77-108 (32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7.06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최근 경기·충청지역의 발굴조사 증가로 인하여 기존에 부족했던 원삼국기 철기자료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철기가 특히 原三國後期 영남지역의 것과 크게 닮아 있는 것이다. 즉 양 지역 간 철기의 강한 유사성은 적어도 원삼국후기에 이르면 양자 간에 어떠한 형태의 교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음을 시사하는 바이다. 본 논문에서는 특히 鐵矛를 분석대상으로 하여 양 지역 간 교류양상을 검토하였다. 영남지역과 경기·충청지역 간 철모의 강한 유사성은 본 논문의 I식 철모 등장부터를 시작으로 한다. 경기·충청지역에서 가장 먼저 同型式의 철모가 확인되는 평택 마두리(平澤 馬頭里) 28호는 특히 경주 황성동(慶州 隍城洞) 575번지 13호·59호와 유물조합양상이 동일하며, 이는 기원후 2세기 전반부터 양 지역 간 교류가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본 논문의 IIa식 철모가 출현하는 기원 후 2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양 지역에서 同型式인 철모의 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철제무기를 매개로 한 양 지역 간의 교류가 본격적이었음을 방증한다. 특히 보병의 주요병기인 철모의 갑작스러운 수량 증가는 경기·충청지역에서 철모의 필요성이 크게 늘었던 까닭이다. 이는 낙랑 혹은 경기·충청지역 내 다른 세력과의 대립구도로 인한 당시의 국제적 상황이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다. 영남 V단계에 접어들면 경주와 김해를 중심으로 영남지역 내에서 권역별로 철모의 형식과 취급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경기·충청지역의 철모는 김해지역의 것과 뚜렷한 관련성이 확인된다. 이는 기원후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김해라는 새로운 철기(철) 생산·유통 중심지의 출현으로 인하여 기존의 기원전 2세기경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경주 중심의 철기(철) 교역망과 다른 새로운 교역망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영남지역과 同 형식인 경기·충청지역의 철모가 영남지역에서 생산된 완제품의 유입인지, 아니면 영남지역 철모의 형식이 動因으로 작용하여 어느 시기부터는 이 지역에서 자체제작한 것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하게 결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철모의 형식뿐만 아니라 조합양상, 제작기법 등에서 영남지역과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충청지역 철모의 출현과 전개는 영남지역의 밀접한 영향력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없다.

국문초록

최근 경기·충청지역의 발굴조사 증가로 인하여 기존에 부족했던 원삼국기 철기자료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철기가 특히 原三國後期 영남지역의 것과 크게 닮아 있는 것이다. 즉 양 지역 간 철기의 강한 유사성은 적어도 원삼국후기에 이르면 양자 간에 어떠한 형태의 교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음을 시사하는 바이다. 본 논문에서는 특히 鐵矛를 분석대상으로 하여 양 지역 간 교류양상을 검토하였다. 영남지역과 경기·충청지역 간 철모의 강한 유사성은 본 논문의 I식 철모 등장부터를 시작으로 한다. 경기·충청지역에서 가장 먼저 同型式의 철모가 확인되는 평택 마두리(平澤 馬頭里) 28호는 특히 경주 황성동(慶州 隍城洞) 575번지 13호·59호와 유물조합양상이 동일하며, 이는 기원후 2세기 전반부터 양 지역 간 교류가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본 논문의 IIa식 철모가 출현하는 기원 후 2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양 지역에서 同型式인 철모의 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철제무기를 매개로 한 양 지역 간의 교류가 본격적이었음을 방증한다. 특히 보병의 주요병기인 철모의 갑작스러운 수량 증가는 경기·충청지역에서 철모의 필요성이 크게 늘었던 까닭이다. 이는 낙랑 혹은 경기·충청지역 내 다른 세력과의 대립구도로 인한 당시의 국제적 상황이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다. 영남 V단계에 접어들면 경주와 김해를 중심으로 영남지역 내에서 권역별로 철모의 형식과 취급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경기·충청지역의 철모는 김해지역의 것과 뚜렷한 관련성이 확인된다. 이는 기원후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김해라는 새로운 철기(철) 생산·유통 중심지의 출현으로 인하여 기존의 기원전 2세기경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경주 중심의 철기(철) 교역망과 다른 새로운 교역망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영남지역과 同 형식인 경기·충청지역의 철모가 영남지역에서 생산된 완제품의 유입인지, 아니면 영남지역 철모의 형식이 動因으로 작용하여 어느 시기부터는 이 지역에서 자체제작한 것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하게 결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철모의 형식뿐만 아니라 조합양상, 제작기법 등에서 영남지역과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충청지역 철모의 출현과 전개는 영남지역의 밀접한 영향력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없다.

목차

Ⅰ. 先行硏究檢討와 問題提起 Ⅱ. 鐵矛資料 檢討와 分析 Ⅲ. 嶺南地域 鐵矛의 變遷과 特徵 Ⅳ. 京畿·忠淸地域 鐵矛의 變遷과 特徵 Ⅴ. 兩 地域 間 鐵矛 交流와 그 意味 Ⅵ. 向後課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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