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이 비록 문자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지만, 문자와 언어에 의지하는 한 근본자성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단경』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이는 불입문자(不立文字)요 불구문자(不拘文字)로 대변된다. 그렇지만 『단경』이 한국 불교의 모태이며 한국 선의 기둥이라고 할지라도,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가 문자와 언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논자는 이 문제에 대한 혜능(惠能)의 해결책이 대법(對法)이라고 보는데, 대법을 바라보는 몇 가지 오해가 해소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논자는 이러한 오해를 네 가지 의문으로 정리한 후, 이를 구체적으로 논증함으로써 대법의 실천적 의미를 구체화할 것이다. 첫째, “왜 36대법인가?” 둘째, “제시된 대(對) 이외의 대는 왜 제외되었는가?” 셋째, “어떻게 대법을 교수(敎授)할 것인가?”, 넷째, “어떻게 대법으로 중도(中道)의 뜻을 살릴 것인가?” 등이다. 첫째와 둘째 물음은 단경이 갖는 상징성과, 셋째와 넷째 물음은 대법의 실천성과 관련된다. 네 가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논증의 실마리는 ‘성품을 동용(動用) 또는 기용(起用)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데, 논자는 이것이 ‘자성을 일으켜 쓰는’ 전식(轉識)과 연결됨을 먼저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용 또는 기용은 혜능의 체용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중도의 의미가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이로부터 대법은 양변을 떠나[不二] 중도를 이룩하는 법이고 자성을 동용하는 법이므로, 일상의 삶 속에서도 근본 종지를 잃지 않고서 선(禪)을 실천할 수 있는 법임이 정당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