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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地域 臺附直口壺의 地域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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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慶州地域 臺附直口壺의 地域相
저자명
안재호(Jeaho Ahn),한승현(Seunghyun Han)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5년|97권 (통권97호)|pp.98-133 (36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2.23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대부직구호는 진변한지역에만 분포하는 삼한시대 후기 후반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경주지역의 덕천리 유적과 황성동유적을 대상으로 형식학적속성분석법으로써 편년한 결과 각각은 10단계, 5단계로 설정되었다. 두 유적 간의 병행관계는 덕천리3단계가 황성동1단계에 해당하고, 덕천리10단계는 황성동4단계와 동시기였다. 즉 황성동유적은 덕천리유적보다 늦게 대부직구호가 출현하며, 더 늦게까지 존속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두 유적의 분석에서 시간속성이 2개의 속성계열만이 동일하고 나머지 7개는 서로 달랐다. 즉 두 유적은 불과 13km 떨어진 거리에 분포하지만 대부직구호의 제작에서 다른 개념과 규제에 따라서 독립적으로 토기가 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토기의 지역색은 기종구성의 차이나, 동일기종이라도 형태적 차이 등에서 차별을 보이고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늦어도 4세기 전반까지는 고대사의 관점처럼, 아직 경주의 정치체는 하나의 정치경제공동체가 아니라, 각각 독립적인 성향인 국읍과 읍락들의 연맹체적인 사회였음을 고고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었다. 4세기대는 고식도질토기단계로서 신라토기양식이 발현되기 이전의 과도기적 단계이고, 적어도 5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고대국가에 진입한 것이라 추정된다.

국문초록

대부직구호는 진변한지역에만 분포하는 삼한시대 후기 후반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경주지역의 덕천리 유적과 황성동유적을 대상으로 형식학적속성분석법으로써 편년한 결과 각각은 10단계, 5단계로 설정되었다. 두 유적 간의 병행관계는 덕천리3단계가 황성동1단계에 해당하고, 덕천리10단계는 황성동4단계와 동시기였다. 즉 황성동유적은 덕천리유적보다 늦게 대부직구호가 출현하며, 더 늦게까지 존속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두 유적의 분석에서 시간속성이 2개의 속성계열만이 동일하고 나머지 7개는 서로 달랐다. 즉 두 유적은 불과 13km 떨어진 거리에 분포하지만 대부직구호의 제작에서 다른 개념과 규제에 따라서 독립적으로 토기가 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토기의 지역색은 기종구성의 차이나, 동일기종이라도 형태적 차이 등에서 차별을 보이고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늦어도 4세기 전반까지는 고대사의 관점처럼, 아직 경주의 정치체는 하나의 정치경제공동체가 아니라, 각각 독립적인 성향인 국읍과 읍락들의 연맹체적인 사회였음을 고고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었다. 4세기대는 고식도질토기단계로서 신라토기양식이 발현되기 이전의 과도기적 단계이고, 적어도 5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고대국가에 진입한 것이라 추정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臺附直口壺의 硏究史 Ⅲ. 有蓋臺附直口壺의 分類와 編年 Ⅳ. 瓦質土器 後期 後半代의 地域相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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