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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대 안동지역 세력의 구성과 그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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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세기대 안동지역 세력의 구성과 그 동향
저자명
서경민(Kyungmin Seo)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2년|83권 (통권83호)|pp.48-79 (32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6.21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5~6세기대 안동지역은 토기와 묘제의 차이를 통해 임하댐수몰지구에 조영된 고분군 축조 집단과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 고분군 축조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임하댐수몰지구 고분군 출토 토기는 크게 경주양식토기와 의성양식토기로 구성된다. 여기에 보주형 꼭지가 부착되고 개신에 투공이 뚫린 개와 직구호 같은 재지계 토기가 더불어 출토되며 횡구식석곽(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을 띤다.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 고분군에서는 경주양식이나 의성양식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고배와 대형 파배, 대형 대부완이 출토되며 횡구식석곽(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되, 한쪽 단벽이 둥근 형태를 띤다. 4세기 말~5세기 초에 사의・임하동고분군을 중심으로 임하댐수몰지구의 고분군이 먼저 조영되기 시작하는데, 이 축조 집단은 동해안에서 안동 및 내륙으로 소금과 기타 해산물을 공급해 주던 길목에 자리하여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크게 성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구려와의 접근도 용이해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어느 정도 독립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후반이 되면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자립화를 시도하고 동시에 경북 북부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당시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의성지역과의 접근이 용이한 안동시가지 지역을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에는 신라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경주지역 적석목곽분과 유사한 안동 태화동 3호분이 축조되고 태화동 7호분에서는 화려하고 양질의 부장품이 다량 출토된다. 6세기 이후가 되면 임하댐수몰지구 인근, 정확히는 임하댐수몰지구와 동해안 사이에 지동・율리고분군이 소규모로 축조된다. 지동 2호분의 피장자는 신라의 영향이 강하게 미쳤던 안동시가지 고분군 축조집단이었던 인물로, 6세기 이후 지동고분군 일대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를 대신하여 동해안에서 들여오는 해산물과 소금 등의 물자 이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국문초록

5~6세기대 안동지역은 토기와 묘제의 차이를 통해 임하댐수몰지구에 조영된 고분군 축조 집단과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 고분군 축조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임하댐수몰지구 고분군 출토 토기는 크게 경주양식토기와 의성양식토기로 구성된다. 여기에 보주형 꼭지가 부착되고 개신에 투공이 뚫린 개와 직구호 같은 재지계 토기가 더불어 출토되며 횡구식석곽(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을 띤다.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 고분군에서는 경주양식이나 의성양식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고배와 대형 파배, 대형 대부완이 출토되며 횡구식석곽(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되, 한쪽 단벽이 둥근 형태를 띤다. 4세기 말~5세기 초에 사의・임하동고분군을 중심으로 임하댐수몰지구의 고분군이 먼저 조영되기 시작하는데, 이 축조 집단은 동해안에서 안동 및 내륙으로 소금과 기타 해산물을 공급해 주던 길목에 자리하여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크게 성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구려와의 접근도 용이해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어느 정도 독립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후반이 되면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자립화를 시도하고 동시에 경북 북부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당시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의성지역과의 접근이 용이한 안동시가지 지역을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에는 신라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경주지역 적석목곽분과 유사한 안동 태화동 3호분이 축조되고 태화동 7호분에서는 화려하고 양질의 부장품이 다량 출토된다. 6세기 이후가 되면 임하댐수몰지구 인근, 정확히는 임하댐수몰지구와 동해안 사이에 지동・율리고분군이 소규모로 축조된다. 지동 2호분의 피장자는 신라의 영향이 강하게 미쳤던 안동시가지 고분군 축조집단이었던 인물로, 6세기 이후 지동고분군 일대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를 대신하여 동해안에서 들여오는 해산물과 소금 등의 물자 이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안동지역 고분자료 검토 1. 기종별 토기의 특징 2. 소지역별 묘제의 변화 Ⅲ. 지역 정치체의 구성과 그 동향 1. 지역 정치체의 성립배경과 양상 2. 신라의 지방지배 강화와 지역사회의 변화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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