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지역 신라 횡혈식석실분의 계층성과 고분 구조의 변천
- ㆍ 저자명
- 최병현(Byunghyun Choi)
- ㆍ 간행물명
- 한국고고학보KCI
- ㆍ 권/호정보
- 2012년|83권 (통권83호)|pp.80-129 (50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고고학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4.11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서기 6세기에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는 최고 지배계층의 묘제가 신라전기의 적석목곽분으로부터 신라후기의 횡혈식석실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경주에서 횡혈식석실분은 통일신라 말까지 축조되었다. 이 글에서는 경주지역에서 축조된 신라 횡혈식석실분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의를 살피고자 하였다. 경주지역의 신라 횡혈식석실분은 석실의 평면형태와 석실에 연도가 붙는 위치에 따라 모두 8개의 형식으로 구분되었고, 이어 최근 발표한 필자의 신라 후기양식토기 편년안에 따라 그 편년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주지역에서 횡혈식석실분은 6세기 전반기부터 축조되었으나 7세기 후반부터는 불교식 화장묘 가 일반화하면서 그 수가 급감하였다. 석실의 형식은 편년과는 관계가 없었으며, 오히려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과 관계가 깊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횡혈식석실은 그 형식과 평면적에 따라 4개의 랭크(rank)로 구분되었으며, 신라후기에 공존한 수혈식・횡구식석곽분에서 횡혈식석실분보다 하위의 랭크가 하나 더 설정되었다. 그리고 경주지역의 신라후기 고분군들은 고분군에 따라 포함되는 석실・석곽의 랭크가 한정되어 5단계의 위계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고분의 각 부분별로그 축조기법을 분석하여 보았는데, 상위 랭크 석실과 하위랭크 석실 사이에는 구조와 축조기법에도 차이가 있었고, 하위 랭크 석실은 시기가 지나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상위 랭크 석실은 시기에 따라 축조기법이 변화하고 그 구조도 변천되어 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경주지역 신라후기 석실분의 양상은 중앙집권화되고 신분제가 정착되었던 당시 신라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된다.
서기 6세기에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는 최고 지배계층의 묘제가 신라전기의 적석목곽분으로부터 신라후기의 횡혈식석실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경주에서 횡혈식석실분은 통일신라 말까지 축조되었다. 이 글에서는 경주지역에서 축조된 신라 횡혈식석실분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의를 살피고자 하였다. 경주지역의 신라 횡혈식석실분은 석실의 평면형태와 석실에 연도가 붙는 위치에 따라 모두 8개의 형식으로 구분되었고, 이어 최근 발표한 필자의 신라 후기양식토기 편년안에 따라 그 편년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주지역에서 횡혈식석실분은 6세기 전반기부터 축조되었으나 7세기 후반부터는 불교식 화장묘 가 일반화하면서 그 수가 급감하였다. 석실의 형식은 편년과는 관계가 없었으며, 오히려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과 관계가 깊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횡혈식석실은 그 형식과 평면적에 따라 4개의 랭크(rank)로 구분되었으며, 신라후기에 공존한 수혈식・횡구식석곽분에서 횡혈식석실분보다 하위의 랭크가 하나 더 설정되었다. 그리고 경주지역의 신라후기 고분군들은 고분군에 따라 포함되는 석실・석곽의 랭크가 한정되어 5단계의 위계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고분의 각 부분별로그 축조기법을 분석하여 보았는데, 상위 랭크 석실과 하위랭크 석실 사이에는 구조와 축조기법에도 차이가 있었고, 하위 랭크 석실은 시기가 지나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상위 랭크 석실은 시기에 따라 축조기법이 변화하고 그 구조도 변천되어 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경주지역 신라후기 석실분의 양상은 중앙집권화되고 신분제가 정착되었던 당시 신라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된다.
Ⅰ. 머리말 Ⅱ. 석실의 형식 1. 형식분류의 기준 2. 석실의 형식 Ⅲ. 석실의 편년 Ⅳ. 석실의 랭크(rank)와 고분군의 위계 1. 석실의 랭크 2. 고분군의 위계 Ⅴ. 고분 구조의 변천 1. 고분의 축조기법과 그 변화 2. 고분구조의 변천과 주요고분의 편년 재검토 Ⅵ.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