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세계 안에서 인간은 타자와 함께 존재하되 각자가 일군 하나의 의미체 안에 살고 있다. 일상 가운데 붙박혀 있는 것들에 대한 ‘알아차림’ 그리고 긴 인내를 감내하며 이루어야 할 ‘의미의 세계’가 인간의 삶에는 존재한다. 유한자로서 인간은, 인간성의 실현을 주체적으로 도모해 나가며 근원성을 포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미궁의 세계를 들추어 왔다. 암묵적으로 자리한 세계가 갖는 미묘한 변화와 그 의미에 대한 주관적 포착, 그리고 의미의 부여는 곧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존재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긴 세월을 거쳐 쌓아 올린 인간의 흔적들은 자기 존재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알타미라(Altamira) 동굴 벽화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생동적 믿음, 시점을 흔들고 있는 폴 세잔(Paul C?zanne)의 사과, 자신의 존재를 탈각하듯 ‘그리고(draw) 양(mass)을 더하는 것’으로부터 ‘지우고 덜어내기’를 되풀이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공허한 인물에서도, 그 행함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